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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세종과학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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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에서 미래를 열어갑니다.

2010년 제21호 2010.05.24~05.30 [세종로탐방] 남극 세종과학기지 해양연구원 이야기

  • 조회수 : 3800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0.07.27

※ 이 글은 전미사 해양연구원이 계간지 <미래를 여는 극지인>에 기고한 것입니다.
글 : 전미사(해양)

남극 세종과학기지 해양연구원 이야기(전미사연구원)

2009년 11월 28일. 출국 하루 전 날. 이제 필요한 짐들은 다 준비해 놓았고 내가 사랑하는 딸 다연이와의 이별만을 준비하면 되었다.

남극 세종과학기지 월동대원으로 지원을 해야겠다고 내 자신과의 목표를 세웠던 2007년. 북극 다산과학기지에서 나는 배속의 다연이와 함께였다. 다산기지의 이름을 따서 태명은‘다산’이었지만, 딸이라는 걸 알게 된 후에는‘다순’이라 부르게 되었다. 내가 남극행을 마음먹었던 건 그때부터였다. 26살의 나이에 큰 포부를 하나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극지연구소에는 극지미세조류를 배양하는 저온배양실이란 곳이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인연은 그곳에서부터였다. 우연한 날 배양실에서 현미경에 보이는 극지생물의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하였던 것이다. 시료들의 매력에 빠져 있었던 나는 배양시료들을 보고 문헌을 찾으면서 종마다 다른 형태적 특성과 생태학적 특성에 대해 궁금증을 느꼈던 것이다. 그때 가졌던 호기심이 나를 지금 남극세종과학기지로 인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면접 때 지원동기를 묻는 면접관에게 정말 아무런 과장 없이“실험실에서 배양되고 있는 시료들이 남극이라는 자연 속에서 실제 생(生)시료일 때 모습과 환경을 느끼고 싶어 가고 싶습니다.”하고 대답을 하였다.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는 지금까지의 여정을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있던 찰나였다.  

다급한 목소리가 안방에서 들려왔다. 분명 방금 전 낮잠을 잔다고 들어갔었는데, 내가 들어갔을 때 이미 다연이는 정신을 잃고 있었다. 다연이가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라 가족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정신없이 발만 구르기 시작하였다. 나는 다른 생각할 겨를 없이 아이를 안고 뛰기 시작하였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가져가야 하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차가 오는 8차선 도로를 뛰어가며 도착한 곳은 집 근처 병원이었다.
 

응급실을 들어가면서부터“선생님, 살려 주세요”를 연발하였던 것 같다. 응급실 의사 선생님은 정신을 잃은 아이에게 주사를 놓으며 수속을 하라고 하였다. 대기실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던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신발도 안 신고 잠옷만 입은 모습이었다. 그때야 정신이 들었던 것 같다. 아이를 안고 뛰어 나오기 바빴던 나는 뒤에 가족들이 따라 오는지 안 오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뛰었던 것이다. 병원 전화기로 집에 전화를 걸고 응급실로 향했다. 의식은 여전히 없었지만 숨을 쉬고 있는 다연이의 모습을 확인한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보내는 출국 하루 전날이었다. 밤새 열이 내리고 있는지 십 분에 한 번씩 체크를 하면서 내 머릿속엔 온통 내일이 출국인데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때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미사야. 네가 원하고 원했던 일이잖아. 아기는 병원에서 괜찮을 것이라고 했으니까 마음에 밟히겠지만 마음 굳게 먹고 내일 공항으로 가자.” 그 말씀에 가슴에 막혀있던 무언가를 한참 동안이나 쏟아내었던 것 같다.

출국 날 아침. 떨어지지 않는 아이를 두고 짐을 꾸려 집에서 나왔다. 공항까지 오는 내내 가족 그 누구도 아무 말을 하지 못하였다. 아이의 상태를 전화로 확인을 하고 그제야 마음이 아주 조금 안정이 되었다. 어머님과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집에서 나왔는데, 그제서야 어머님께 감사하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신랑이 군대에 갈 때에도 이렇진 않았는데, 마지막 신랑의 모습은 하염없이 슬퍼 보였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23차 월동대원들과 그 가족들의 얼굴도 다 슬프게만 보였다.

그렇게 입남극까지 3일의 시간 동안 건강하게 잘 지낸다는 아이의 소식을 들어도 마음은 무겁기만 하였던 것 같다.

이것이 벌써 5개월 전의 일이다. 
 

해양의 환경을 알기 위해 매일 채집하여 수온과 염도를 측정한다.

지구 환경변화에 따른 남극 해양생태계 변화 양상

해양의 환경을 알기 위해 매일 채집를 하면서 수온과 염도를 측정한다. 연구실로 시료를 가져와 영양염 샘플을 제작하고, 부유물질의 무게와 클로로필의 농도를 측정한다. 생물의 종조성과 정량화 분석을 위하여 HPMA Slide를 제작하고 나면 오전 일과는 거의 마무리 된다.
 

최근 대기 중 이산화탄소 증가로 인한 지구 온난화, 오존층 파괴에 의한 자외선증가와 같은 전지구적인 환경변화에 노출되고 있는 가운데, 오랜 기간 물리적으로 안정된 남극 환경에 적응하여 진화해 온 남극 생물들은 지구상 다른 지역의 생물보다 이와 같은 환경 변화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것으로 생각 되고 있다. 이것이 무엇보다 남극에서의 해양 환경과 생태계가 중요한 이유이다.

 

남극 세종과학기지가 위치한 남극반도 해역은 지구환경변화에 가장 심하게 영향을 받고 있는 지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존층 파괴, 지구온난화, 엘리뇨 등으로 대류순환, 해류순환, 대기환경, 해양환경이 극심하게 변화함으로써 해빙분포, 수온, 염분, 수괴안정성 등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전체 해양생태계의 일차생산자인 식물플랑크톤의 서식환경 변화로 인한 생산력 및 우점종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금까지의 식물플랑크톤 연구는 종 수준에서의 연구가 아닌 전체 생물량의 변화만을 보아 왔기 때문에 현재 세종기지에서 수행중인 종 수준에서의 식물플랑크톤 변화양상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유일한 것이다.

 

세종기지 주변 해역에서의 식물플랑크톤 우점종 변화 양상을 정확하게 이해함으로써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세한 환경변화가 일차생산자인 식물플랑크톤에 어떠한 영향을 주며, 이들의 변화가 전체 남극 해양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현재 매일 식물플랑크톤의 정량화 분석을 위해 현미경 검경을 하고 있으며 9차 월동대 해양/생물 연구원이셨기도 한 강성호 대장님과 함께 매일 측정한 매년의 환경변화(수온, 염분도, 클로로필의 양)를 비교하고 있으며 그 환경변화에 따른 식물플랑크톤의 종조성과 생물량을 관찰하고 있다.

 

2009년 SCAR(남극과학위원회) 보고서와 과학전문지 Science에 보고된 남극반도 해역에서의 식물플랑크톤 변화 양상에 대한 연구 보고를 통해 남극반도에서 연구가 집중되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듯이 남극 세종기지의 연구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처음 남극 시료의 형태를 보았을 때 정말 신(神)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종마다 다른 정교한 형태 때문에)을 하였다. 그렇게 막연히 시작된 남극시료의 매력 뒤에는 엄청난 환경 배경과 환경 문제들이 있었다. 지금 세종기지에 서 있는 나는 남아 있는 8개월 동안 올 일 년간의 변화 양상을 경험하며 눈과 몸으로 익히고 이후 한국으로 돌아가서는 지금까지 15년간의 데이터들을 분석하여 환경변화와 생태계변화의 밀접한 관계와 지구 환경변화와의 관계를 연구를 할 것이다. 
 


세종기지도 한국에서의 대가족이 사는 모습이다. 서로 배려해 주고 격려해 주며 이해해 주는 그런 사랑하는 가족 관계와 같다. 모든 대원들이 떨어져 있는 가족의 그리움을 느끼면서 전화로 그 그리움을 채우고 있지만, 우리 대원들은 대한민국 미래의 자부심을 가지며 생활한다. 나 또한 한국에 있는 신랑과 딸, 그리고 그리운 가족들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이 그리움을 씻어낼 수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나는 나의 가족과 대한민국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남극 세종과학기지의 최초의 여성연구대원으로서 좋은 선례를 만들고, 과학자로서 정확한 데이터와 많은 결과물을 가지고 자랑스러운 엄마와 부인으로 2011년 그리운 고국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다. (끝)

 

제23차대 월동대원 단체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