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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세종과학기지

눈나라 얼음나라(웹진)

세상의 끝에서 미래를 열어갑니다.

2010년 제28호 2010.07.12~07.18 [세종로탐방] 특별기고- 열대의 땅, 아마존에서 혹한의 땅, 남극으로!(2부)

  • 조회수 : 209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0.09.13

글 : 김진만(MBC 프로듀서)

아침 회의시간. 겨울로 접어들면서 정성이 예전만 못하다, 식단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둥 대원들의 투정 어린 항의가 나오기 시작하자 우리의 강경갑 조리장은 서둘러 사건을 진화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소위 "식단개선 위원회"를 발족시켜 자신이 위원장을 맡음으로써 명실상부 주방에서 최고의 권위를 회복한 후, 더 이상 자신의 식단 정책에 아무도 왈가왈부 할 수 없도록 하게 하려는 것. 그런데……. 전미사 대원이 위원장이 되었다. 강성호 대장이 조리장의 의중을 꿰뚫어버린 것. 더욱이 강경갑 조리장은 전미사 대원의‘밥’이다. 조리장의 얼굴이 어두워져갔다.


전미사 대원은 강성호 대장에게 생물학 교습을 받고 있다. 매일같이 식물플랑크톤을 열심히 공부하기로 대장과 약속을 하고 어렵게 이곳 세종기지 월동대원으로 합류했던 터라 공부를 게을리 할 수 없는 입장. 하지만 전미사 대원의 머릿속에는 저녁 식사 후 김재효 상사와 미처 끝내지 못한 당구 게임의 공 배치가 떠나지 않는다. 아……. 아까‘우라(뒤돌리기)’를 치지 말고‘오마와시(앞돌리기)’를 칠 걸…….

 

 

오늘 정상준 유지반장이 할 일은 세 가지. 현대호 펌프를 수리하고, 담수화기 시운전을 한 후, 안테나를 교체하는 것. 조금 있으면 킹조지 섬에 극한의 겨울이 닥친다. 하루빨리 기지상태를 최고조로 올려놓아야 한다. 시간이 부족하다. 정 반장의 작업 지시에 날이 서있다. 저 멀리에서는 정귀성 대원이 굴삭기로 현대호의 얼음을 부수고 있다. 손을 움직이는 것보다 굴삭기를 조종하는 게 더 편하다는 정 대원은 촬영카메라만 보면 늘 손가락으로 "브이(V) 자"를 만들어 화면을 못 쓰게 만드는 취미가 있다. 긴장 속에서 힘든 일을 하지만 최정규, 정귀성, 이상은 대원의 얼굴은 늘 웃음이 가득하다. 이들의 웃음에 정 반장 얼굴에도 점점 미소가 번진다. 최정규 대원은 오늘 일을 마치고 넷이 모여 한잔 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건배의 달인 최정규 대원은 오늘도 첫 잔 건배를 힘차게 외친 후 바로 방으로 올라가서 잠이 들었다.

 

오늘은 체육의 날. 김재효 상사의 날이다. 배구, 탁구, 농구 어떤 종목에서도 김재효 상사 팀은 승리한다. 반대로 한승우 총무팀은 늘 패배한다. 지난 번 중국기지에서 열린 한-중 친선경기에서 한승우 총무가 보여준 배드민턴 실력은 지금도 한국과 중국 기지 사이에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 특히 배드민턴공이 땅바닥에 떨어진 한 참 뒤에야 몸을 움직이는 초절정 슬로우(slow)란……. 한승우 총무는 중국과의 친선을 도모하기 위한 위장이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지켜본 사람들은 단지 실력이 그럴 뿐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 김 상사는 승부에 초연한 듯 의연함을 보이려 하지만 사실 이기면 되게 좋아한다. 오늘 배구시합에서도 김 상사 팀은 이겼고 한 총무 팀은 졌다.

 

조범준 대원이 지자기 관측동으로 들어간다. 조 대원은 관측동으로 들어가자마자 옷을 벗기 시작한다. 혹시…? 아니다. 지자기 관측동에서는 기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어떤 것도 몸에 걸쳐선 안 된다. 오작동 때문이다. 유리창 밖에서 바라본 속옷차림의 조 대원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오후가 되자 블리자드가 불기 시작한다. 최문용 대원이 눈 폭풍을 뚫고 고층대기 연구동으로 들어간다. 두 번째 월동대원으로 참가한 최 대원은 늘 와이프 걱정이다. 출산이 코앞이기 때문이다. 월동대원으로 입남극하기 직전 와이프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최 대원. 하지만 고층대기 장비가 워낙 많아진 탓에 업무를 시작하면 집안 걱정을 할 틈이 없이 정신없이 머리와 몸을 움직여야 한다. 녹초가 된 몸을 끌고 생활동으로 돌아올 때 한 손에 저녁 도시락, 다른 한 손에는 손전등을 들고 올라오는 윤종연 대원을 만난다. 혼자 외롭게 남극의 밤을 지키며 일을 하는 윤종연 대원. 그의 하루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다음날 아침. 의무실로 이양동 대원이 들어왔다. 오늘부터 세종기지 정기 건강검진이 시작되는 날. 겨울이 시작되는 요즘, 해는 거의 보기 힘들다. 몇 시간의 희뿌연 빛이 단지 낮이 있음을 알려줄 뿐이다. 밤마다 ‘날씨의 신’과의 격정적 토론 끝에 예보를 결정한다고 알려진 만큼 이양동 대원의 날씨 예측은 정확하다. 날씨에 따라 외부작업이 정해지기 때문에 이양동 대원의 판단에 기지의 안전이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햇빛을 볼 수 있는 시간이 급격히 줄어가는 요즘, 이양동 대원의 컨디션은 그리 좋지 않다. 예전처럼 여자 아나운서 사진을 깊이 음미해 봐도 기분이 쉽사리 업(up) 되지는 않는다. 의사 이어진 대원은 기지 대원들의 건강이 가장 신경이 쓰인다. 조금 아까도 한대관 대원이 어깨 근육통으로 물리치료 마사지를 받았었다. 얼마 전 빙판에 다리를 삐끗한 이기영 대원의 몸 상태도 걱정이다. 겨울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요즘이 의사로서 가장 긴장해야 하는 시간들이다. 남극인 만큼 의료장비를 갖추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어진 대원과 이양동 대원은 시간이 나?? 날씨의 신이 삐치지 않기를…….


한대관 대원이 주방 오븐을 고치고 있다. 강경갑 조리장은 오븐 고장으로 인해 자신의 음식 실력을 마음껏 펼칠 수 없다는 말에 한대관 대원이 의아해하며 수리에 나섰다. "오븐 탓은 아닌데……." 한대관 대원은 한 시간 만에 정확한 진단을 통해 오븐 수리에 성공했다. 배선 탓이었다. 오븐은 고쳤지만 저녁 메뉴가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한 밤의 세종기지. 밤 11시, 숙직인 류성환 대원이 기지 점검을 위해 완전무장을 한 채 기계동 철문을 연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블리자드의 낮은 바람 소리 뿐. 극한의 남극에서는 화재나 작은 사고에도 대원들의 안전이 크게 위협을 받을 수 있다. 다행히 오늘 밤도 무사히 지나가고 있다. 전미사 대원과 이상훈 대원은 고국에 두고 온 아기들과 화면을 통해 서로를 어루만진다. 강경갑 대원은 꼭 성공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는다. 강성호 대장은 대장실에서 키우는 허브 향을 맡으며 한국 극지연구소에 메일을 보낸다.

 

"이곳은 이상무. 모두 건강합니다."